알쓸신잡(신비한 잡학사전)

울고 넘는 박달재♬♪~♫♪~~~♪

대한민국도장깨기 2011. 2. 15. 18:42

 

봄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일까?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장 아래로 졸졸졸 흘러가는 계곡물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어디로 가야할까?

나침판으로 방향을 맞추듯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중에

귓가에 흘러드는 노래 한곡

 

 

 

 

 

 

 

♬♪~♫♪~~~♪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

물항나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어소 소리쳤소 이가슴이 터지도록 ♫♪~~

♫♪~~~♪~♬♪~
부엉이 우는산골 나를두고 가는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가소
도토리 묵을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에 금봉이야   ♪~♬♪~

 

 

 

 

 

연세가 지긋이 드신 어른들중에 '울고 넘는 박달재'노래를 모르는 분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박달재 전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충북 제천시에 있는 <박달재>는 고갯길이 워낙 험하고 가파른데다 박달나무가

많이 우거져 있어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많았다.

또 여기다 고개를 넘어가는 행인들을 노리는 도둑들도 많아서 이 재를 넘어 시집을 간

새색시는 두번 다시 친정에 가기 어려웠다고 하니

그 산새가 얼마나 험난했을지 짐작이 될것도 같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한번 이 고개를 넘어 시집을 간 새색시는

아무리 친정에 가고 싶어도 다시는 친정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새색시가 눈물을 쏟는다고 하여 '울고 넘는 박달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박달재의 험난한 산새보다 더 우리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사연은 역시 박달재 선비와

금봉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박달재의 본래 이름은 천등산과 지등산의 영마루라는 뜻을 지닌 이등령이었다. 그런데  조선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과 이곳의 어여쁜 낭자 금봉의 애닳은 사랑의 전설이 전해지면서 박달재로

불리게 되었다.

 

 

 

 

장원급제라는 부분 꿈을 안고 한양으로 가던 박달은 고개아래 촌가에서 하룻밤을 유려하다가

길손을 맞이하는 금봉의 순수하고 청초한 모습에 정신을 빼앗기게 된다.

 

금봉 또한 박달의 준수하고 늠름한 모습에 잠 못 이루고 달밤을 거닐다가 역시 금봉을 그리면서

서성이던 박달을 만나 사랑을 나눈다

 

 

 

 

 

몇날을 머물며 금봉과 사랑을 속삭이던 박달은 과거에 급제한 후에 혼인 하기로 언약하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난다.

 

박달이 떠난 이후 금봉은 박달의 장원급제를 서낭신께 빈다.

그런데 과거가 끝나고도 박달의 소식이 없자 크게 상심하여 고개를 오르내리며

박달을 애타게 부르다가 삶을 거두고 만다.

 

 

 

 

한양에 온 박달도 과거 준비는 잊은 채 금봉을 그리는 시만 읇다가 낙방 한 후

금봉을 보기가 두려워 차일피일 미루다 금봉의 장례 사흘 후 되돌아와 금봉이 죽었다는 말을 듣는다.

 

박달은 땅을 치며 목놓아 울다가 언듯 고개를 오르는 금봉의 환상을 보고 뒤쫓아가 금봉을 와락 껴안았으나

금봉의 모습은 사라지고 박달은 낭떨어지에 떨어져 죽고 만다.

 

이후, 봄이면 두 남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대변하듯, 연붉은 진달래꽃이 아름답게 핀다고 한다.

 

 

 

 

 

과거에 좀 떨어졌어도 얼른 금봉이에게 달려왔어야지

왜 박달 선비는 그렇게 용기가 없었을까?

 

비록 장원급제는 못했어도 둘이 오손도순 시나 읊으면서 살아도 행복했을 것을 ㅠ.ㅠㅠ.

갑자기 너무 슬퍼진다.

 

하지만 이 두사람은 분명 과거라는 시험제도가 없는 저 세상에서 오손 도손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박달재공원을 산책하다가 하나 깨달은 것은

봄은 역시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소리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살며시 샘솟는 사랑의 마음으로 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