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도장깨기/여행지 도장깨기

곰나루 신화에 등장하는 '곰' 재해석 해볼까요?

대한민국도장깨기 2011. 3. 14. 14:11

 

 

대전에 있는 시청역에서 지하철을 타려고 서 있노라면 눈에 확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어요

 

 "공주 함께 갑시다"

 

물론 공주라는 단어위에는 왕관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요.

머리에 왕관까지 씌워서 데리고 가겠다는데 안 따라갈 여자가 어딨겠어요^^

따라가는 순간 누구도 안부러울 왕족이 되는 건데요^^

하여 저도 큰맘 먹고 공주로 날아갔다 왔네요

 

 

 

그런데 '공주'가 원래는 '곰주' 였다는 사실 다 알고 계시죠?

왕족이 된 기분으로 공주를 항해 열심히 달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을 확 헤집고 달아나는 녀석이 있었으니

그녀석이 바로 요렇게 예쁜 '곰'이라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곰이 물속을 헤엄쳐 왔는지 많이 지쳐 보이네요~

아이구 안쓰러워라

따뜻한 봄햇살 한자락 곱게 펼쳐서 사뿐히 덮어주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이곳은 공주에 있는 곰나루 솔밭입니다.

공주에 있는 금강변에 조성되어 있는 솔밭으로 이 솥밭에는 슬프디 슬픈 전설이

숨어있는 곳입니다.

 

 

 

 

왜 솔밭에 곰조형물이 서 있는걸까요?

자!~ 금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먼 옛날로 잠시 시간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날 옛날에 공주의 연미산에 곰과 나무꾼이 살았더랬습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

 

옛날에 워뜬 사람이 산에 나무하러 갔드래유. 그런디 큰 암콤이 그 사람을 읍고 굴 속으로 들어갔드래유. 굴 속에 가두고는 아침즈늑으로 믁을 긋을 구해다 주드래유 근디 나갈 즉에는 그 사람이 내뺄까 무스워서 큰 독으로 문을 막아 놓고 다니그든. 멫 해를 그기서 같이 지내면스 그릏게 믁을 긋도 풍부히 존 글로 갖다주고 허니께 잘 믁고 지내는 그시키로다가, 그 암콤이 사람같이 볼름 자빠즈스 자고 으짜고 하니께 그기스 새끼를 두 마리를 났드래유. 츠음에 한 마리를 또 한 마리를 낳고 그릏게 그륵즈륵 멫 해가 되읐그든유.

곰이 인제 안심을 하고 그 사람 믁을 글 구하로 나가는 판에, "에이 인자 안심이지. 자식도 있고 그르니게 워두루 가단 안할 테지." 하구스 독문을 그냥 열어 놓고 갔드래유. 그래 독문을 열으놓고 간뒤에 가만히 그 사램이 생각 하니게 암만해도 워틓게 내빼야긋그든. 그래 단븐에 독문을 열으놓고 간 뒤에 나루가 있으스 그기를 불나게 달려와가 주고스 배를 타고 즙짝으로 근느갔그든유. 곰이 그때 돌아왔단 말이유. 둘어와서 보니께 아 그 사람이 볼세 강 근느스 가그든. 다시 도라오라고 소리를 질르도 본 치 않고 가고 그르니께 나중에는 큰 자슥놈을 들구스는 늬 안 오믄은 이그 쥑인다고 해도 본 치도 않고스 그냥 가니께 그놈 강에 집어늫고 또 들어가주고스 즉은놈 또 붙잡으가주고스 또 강에다 집으놓고 즈도 그기 빠즈 죽읐드래유.

죽은 뒤에 강에 배가 댕길라믄 그그스 복수를 해유. 다른 배는 괜찮애도 시방으로 말하면 국곤가 그 곡식을 실고스 위데로 운반하든가 서울로 가즈갈라고 하는 배가 그그를 지낼 직은 그 놈이 복수하고, 복수하고, 아 그래스느무 한 해 두 해가 아니구스는 자꼬 그렇게 되니까 곰이 그렇게 죽었다는 그 뒤에부터 그러니께스르는 아마 그그다 사당을 지었던 모양이지. 그래가주고 여그 관찰사 있일 즉으 관찰사가 초하루 보름으로 댕기구 인제 그글 위하구 그란 뒤 부틈은 복수가 안 되드래요. 그래 그 여그 관찰사로 오는 대로다 초하루 보름으로 댕기고 부임하면 일변 그그 믄즈 가고 그래스루는 그기다가 곰 사당 집을 짓고 그기 사당지기도 두고 그리가주고스는 왜증때 되니까 다 읎으지고 그 집도 헐으 뻐라고 지금은 읎으젔으유.

 

 

 

 

충청도 사투리 버전이라서 내용 파악이 잘 안되실 분들을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현대판 버전으로다 ~~~

 

곰나루 맞은 편 연미산에 암곰이 살았는데, 나무꾼 사내를 붙잡아 와 굴에서 함께 지냈다.

아이가 둘 생기자 암곰이 안심한 틈을 타 나무꾼은 강을 건너 도망쳐 버렸다.

돌아오라고 애원했는데도 사내가 듣지 않자 암곰은 두 아이와 함께 강물에 몸을 던졌다.

그 뒤 금강에서는 배가 뒤집히는 일이 잦았는데, 사당을 지어 곰의 넋을 위로하자 비로소 재앙이 그쳤다고 한다.

 

 

 

내용이 좀 쉽게 들어오셨나요?^^

 

 

 

 

곰나루 신화속에 나오는 곰도 한때는 저렇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새끼들과 행복한 한때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마누라가 가져다주는 밥으로 배를 불리면서 집에서 빈둥 빈둥 놀기만 했었을 나무꾼의 눈에는

잠자리 날개처럼 고운 옷을 걸친 여시같은 여자가 자꾸만 눈앞에 가물거리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결국은 마누라가 잠시 방심한 틈을 타서 내빼거린게 아닐까요?

으~~~아~~~~~아~~~~~~앙 ~~~

 

너무 착하기만 했던 암곰은 그렇게 매몰차게 자식과 아내를 버리고 떠난 남편도 남편이라고

나루에 나와서 제발 마음 돌려먹고 돌아와 달라고 마지막 베팅을 했던 건데요

 

아쉽게도 나무꾼한테는 땍도 없는 얘기였던 거지요

결국 아이들과 암곰은 이렇게 슬픈 전설을 남긴채 '공주'라는 지명을 낳아놓고

신화속으로 사라져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여색에 약하다는 말씀이지요

 

곰나루 신화속에 나오는 암곰은 아마도 여자로서 자신을 가꾸기 보다는

부지런히 일해서 남편과 자식들 배골리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던

우리네 시골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이 부분에서 잠시 반짝* 반짝*

우리 여자들의 대단한 착각중에 하나가 그저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 먹여 살리고

헌신과 희생으로 가족을 수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착각하는 부분이라는 점이예요

 

하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많은 선후배들의 경험을 통해서 들은바 있는 고로

잠시 너무 착하고 성실하기만 했던 암곰의 착각에 대해서 가슴을 치며 통탄할 밖에요 ^^

 

 

 

 

설명에 나와있는 것처럼 1972년에 백제 때의 유물로 추정되는 돌곰이 이곳에서 출토되어

현재 공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하네요

 

 

 

 

이곳이 바로 돌곰이 출토된 자리입니다.

1972년에 이곳에서 돌곰이 출토되면서 한맺힌 곰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서 세운

곰사당입니다.

 

왠지 이 곰사당 앞에서 서면

우리 한민족 여성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금강물이 되어

저 곰나루로 흘러갈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

 

그래도 현대에는 여성들의 삶이 많이 변모해가고 있고 또 여성의 권위도 많이 바뀌어가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바위에 새겨놓은 곰나루 신화 이야기입니다.

 

저는 맨 처음 이 곰나루 신화를 지어낸 작가가 누굴까?

많이 궁금해지는데요

 

아마도 곰나루 신화를 지은 작가가 현대에 살아 돌아온다면 이 시대 안방극장의 대모로 추앙받고 있는

김수현 작가의 인기도 장담할 수 없을것 같습니다. ㅋ~

 

예로부터 전해지는 신화속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철학이 표현되어 있는데요

곰나루 신화가  끊이지 않고 계속 구전되어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후대 사람들에게까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너무도 고요해 보이는 곰나루

언제쯤 이 곰나루에서 암곰의 슬픈 전설이 사라지게 될까요?

 

제가 건축을 전공했었더라면 저는 가장 먼저 이 곰나루에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다리를

만들어주었을 겁니다.

 

그래서 처자식 내버리고 도망가는 나무꾼을 암곰이 쫓아가서 잡아다 집에 가둬놓고

평생 호위호식하며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은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