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도장깨기/여행지 도장깨기

아버지가 없는 나라’ 루구후 <펀글>

대한민국도장깨기 2011. 3. 13. 13:17

아버지가 없는 나라’ 루구후 
[신현수의 걷기여행 ⑫] 차마고도를 따라서, 중국 윈난성의 소수민족 <4> 
 

 
 

 

남녀관계는 마음 나름?

 

▲ 루구후의 거무산.

 

루구후는 소수민족 모서족이 사는 마을이다. 중국에서는 모서인이라고 한다. 인구가 일정 규모 이상이 되어야 백족ㆍ나시족 등 ‘족’을 붙여 부르는데, 모서족은 기준에 못미처서 그냥 모서인이라고 부른다. 생각해보면, 숫자로 ‘족’과 ‘인’을 구별하다니 그것도 참 부당한 노릇이다. 모서인은 현재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인류 중 유일한 모계사회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관심 반, 호기심 반, 모서족에 대해서 매우 흥미 있어 한다. 소설가 이경자 누님도 이곳 루구후를 다녀와서 ‘이경자, 모계사회를 찾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남녀 간의 만남은 주로 청춘남녀들이 모여 노는 ‘완회’라는 등불야회에서 이루어진다. 13세 이상이면 성인례를 치른 후 성인이 된다. 눈이 맞으면 밤에 남자가 여자의 집을 찾아간다. 그러나 새벽 남들 눈에 띄기 전에 여자 집을 나와야 한다. 이런 걸 ‘남자가 여자에게 달려가 혼인 한다’ 하여 ‘주혼’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혼’이라는 단어는 외부인들이 만들어 낸 말이다. 혼례가 아니니 당연히 ‘혼’이라는 말이 붙을 수 없다. 마음이 맞으면 관계가 지속되고, 어느 한 쪽이라도 마음이 맞지 않으면 관계가 종료된다. 아이가 생기면 전적으로 엄마가 키운다. 아이는 주로 외할머니ㆍ어머니ㆍ외삼촌ㆍ이모와 한 가족이 된다.

남자 아이들은 아버지가 없으므로 주로 외삼촌이 가르친다. 예단으로 주고받은 10억원이 많네, 적네 하면서 혼인을 사고파는 계약관계로 떨어트린 우리 현대인들이 보기에 인간본능에 가장 충실한 그러면서도 ‘큰 탈이 없는 방식’ 같다.

그러나 현재는 이 제도가 많이 퇴색되어 웬만하면 아버지도 알고, 아버지가 부자라면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기도 한다. 서유기의 손오공이 지낸 여아국이 루구후라는 얘기도 있다.

 

루구호 호수와 거무산

 

▲ 푸른색 물감을 마구 풀어 휘저어놓은 것 같은 루구후 호수.

 

드디어 루구후 호수에 갔다. 배도 타보고, 새우 잡는 모습도 구경했다. 루구후 호수는 해발 2700m에 위치한 일급 청정 호수다. 평균 수심이 40.3m, 최대 수심 93.5m로 중국에서 세 번째로 깊은 호수다. 호수 바닥까지 다 보인다. 거무산은 루구후 어디서도 잘 보인다. 물론 호수 위에서는 더 잘 보인다.

가만 있자, 거무산?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가는 게 있다. 거무? 줄이면 ‘검’, 아! ‘신’이라는 뜻이구나. 우리 고어와 일본어에서 ‘검’ㆍ‘곰’ㆍ‘고마’ㆍ‘가미’ 등은 모두 ‘신’이라는 뜻이다. 단군신화의 ‘곰’이 동물 곰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신이라는 뜻의 ‘곰’이다. 충남 공주에 가면 곰나루가 있는데, 모두 비슷한 어원이다. 그러고 보니 단군 왕‘검’도 있군. 일본어의 ‘가미가제’, ‘신풍’이란 뜻이다.

루구후에서는 돼지들이 개나 고양이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구제역? 루구후 돼지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잘 걸리지도 않겠지만, 걸려도 금세 나을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 돼지도 나을 수 있다. 그럼 수백만 마리나 왜 마구 파묻나?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구제역에 걸린 돼지들은 사료를 먹어도 살이 안 찐다. 언제 나을지 모른다. 인간에게 돼지나 소는 더 이상 생명이 아니라, 한갓 물건이고 빨리 팔아서 돈으로 바꾸어야할 상품이다. 아, 우리가 동물들에게 지은 죗값을 무엇으로 어찌 치를까? 구제역으로 비명횡사한 수백만 마리 소와 돼지들의 명복을 빈다.

 

소수민족들이 모여드는 ‘용닝장터’

 

   
▲ 용닝장터의 여인들.

 

여행자들이 좀처럼 찾기 어려운 오지 중의 오지 ‘용닝장터’를 탐방했다. 길잡이로 나선 짜씨가 버스 안에서 노래를 부른다. 얼굴도 잘 생겼는데 목청도 좋다. 우리는 미리 예습 하고 온 구호, “야쏘! 야쏘! 야야쏘!”를 외친다. 이 구호는 모서족들이 노래가 끝났을 때 잘했다고 외치는 구호다.

느닷없이 다음 차례로 내가 지목이 됐다. 아, 이런 순간 난감하다. 외국인들과 만났을 때 도대체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태국 치앙마이 고산족 트레킹을 할 때도 고산족 원주민ㆍ호주 여대생ㆍ독일 청년ㆍ미국인 등이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 앉아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날 난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아리랑을 불렀던가?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비~린 내 나는 부둣~가에…”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라 내가 불렀던 노래. 아이고, 노래가 그것밖에 없나? 어렵게 루구후까지 가서? 다시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루구후 인근 여러 소수민족들이 모여드는 용닝장터에서는 우리가 구경꾼이 아니라 그들이 구경꾼이다. 완전 창경원 원숭이처럼 우리를 민망할 정도로 빤히 쳐다본다. 아이들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어느 소수민족 여인일까? 딸인지 동생인지 함께 우리가 찍어 준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 년 전으로 날아간 듯하다. 가방과 양동이와 안경과 시계와 솥단지와 이불을 한 가게에서 파는 용닝시장. 브라운관 티브이를 고치는 전파사도 있고, 길가의 시계수리공도 있다. 여기서도 역시 돼지가 거리를 활보한다. 용닝이 아무리 오지이지만 그래도 천원숍을 피해 갈 수는 없다.

 

 

티베트불교 사찰 ‘자메이사’

 

 

▲ 버터 불상을 만들고 있는 노인.

 

용닝시장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용닝의 티베트불교 사찰인 자메이사를 탐방했다. 자메이사는 윈난성에서 두 번째로 큰 티베트불교 사찰이다. 윈난성은 티베트불교 문화권이다. 절에 대해 스님의 자세한 설명을 들었고, 또 아무나 못 들어가 본다는 문화재급 건물에도 들어가 봤다.

모든 병이 없어진다고 해서, 부처님을 모셔 놓은 책상 밑으로 들어가 기어도 봤다. 정말 아픈 몸이 나을까? 몇 백 년 묵은 사원 내의 먼지만 내 무릎과 팔꿈치로 닦아준 거 아닐까? 계속 손을 모으고 다녔더니 통역자 정군이 종교를 믿느냐고 내게 물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몰라도 부처님은 믿는 게 아니라 내가 부처가 되는 것을 도와주는 분이다.

불교는 타력이 아니라 철저히 자력으로 도를 깨우쳐야하는 종교다. 그래서 난 불교가 마음에 든다. 그러나 우리나라 종교 현실은 다 똑같다. 불교나 기독교나 심지어 천주교까지 다 똑같다. 스님을 믿고, 목사를 믿고, 신부를 믿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을 빌고 돈을 빈다. 북녘아이들 도울 2차 헌금은 안 내도 스님ㆍ목사ㆍ신부 생일축하금은 잘 낸다. 세속의 지위가 교회나 사찰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자메이사에서 하고 있는 특이한 불사 중의 하나가 굳은 버터에 색을 칠해 불상 등, 절에서 필요한 갖가지 것들을 만드는 것이다. 버터 불상을 만들고 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에 카메라를 바싹 들이대고 계속 셔터를 누른다. 사진을 찍을수록 대상에 대한 사랑 없이는 사진이 안 된다는 것을 느낀다.

절에서 돌아오는 길의 루구후 호수는 아침과는 색깔과 느낌이 전혀 다르다. 푸른색 물감을 마구 풀어 휘저어놓은 것 같은 코발트블루의 향연. 해질 무렵 숙소로 들어와 보는 루구후 호수는 또 뭔가 쓸쓸하고 처연한 느낌. 겨우 이틀 지내면서 이렇게 다양한 루구후 호수를 느끼는데 봄여름 가을 겨울의 루구후 호수와 거무산은 또 얼마나 천변만화의 조화를 부릴까? 언제 여기에 다시 올 수 있을까?

 

 

등불야회, 완회

 

 

▲ 완회를 즐기고 있는 모서족 남성들.

 


저녁을 먹는데 모서족들이 ‘칭커(=쌀보리)’로 담가먹는 술 ‘수리마주’가 나왔다. 벼가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칭커’는 이 지역의 주요 곡물이다. 우리 안동소주 비슷한데 약간 욕심이 난다. 이름도 재미있다. 이 술을 먹으면 ‘수리 수리 마하수리’ 마술을 할 수 있을까? 짜씨가 또 술 한 잔 함께 하자면서, 지금부터 자기가 권주가를 부를 텐데, 자기 노래가 마음에 들면 우리말로 ‘완샷’을 하고(‘완샷’이 우리말이야?),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술을 마시지 말란다. 저 현란한 짜씨의 화술이여.

저녁을 먹고 나서, 모서족들의 전통 춤을 보고, 노래도 듣고, 함께 어울려 춤도 출 수 있는 완회(등불야회)에 참가하기 위해 객잔을 나섰다. 완회 장소는 객잔에서 멀지 않았다. 객잔 강아지도 따라 나섰다. 그런데 왼쪽 뒷다리가 불편하다. 그러나 세 발로도 잘 걷는다. 원하는 사람은 모서족 옷으로 갈아입고 완회에 참가했다. 모서족 남성들의 노래는 힘차고 춤은 씩씩했다. 모서족 여성들은 예뻤고 목청은 고왔다.

자연스럽게 밤마다 함께 만나 교제를 했다. 음습하지 않아서 좋다. 이렇게 완회를 즐기다 마음에 맞는 짝이 생기면 손바닥을 긁어 서로의 의사를 확인한다. 그리고 밤에 여성의 집으로 달려간다. 여름 내몽골에서 보여줬던 정군의 춤 솜씨는 그대로였다. 모서족 여성들이 ‘노바디’ 춤을 가르쳐달란다.

모서족 주민들과 여행자들이 춤과 노래를 주고받는다. “야쏘! 야쏘! 야야쏘!” 추임새는 계속 되고 밤은 깊어간다. 완회가 끝난 후 객잔으로 돌아와 뒤풀이를 했다. 쏟아지는 별 빛 속에서 통돼지 바비큐를 안주로 짜씨를 비롯한 주민들과 여행자들이 함께 수리마주를 마셨다. 이런 밤은 취해도 좋을 듯싶었다.

 

 

아버지가 없는 나라

1월 27일,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옛날부터 모서인들이 신성시해온, 루구후 호수가 꺾이는 사천성과의 경계지점에 있는 제사 터까지 도보 트레킹을 다녀왔다. 새벽 별빛은 차갑게 빛나고, 으스름 하현달은 호수를 비춘다. 바람은 다행히 그다지 차갑지 않다. 어느새 강아지도 불편한 다리로 따라나선다.

돌아가라고 쫓아도 한사코 따라온다. 옆 마을에서 다른 강아지 한 마리가 따라붙는다. 이 자식은 다른 마음을 품었는지, 우리 객잔 강아지(암놈이다)는 귀찮다는데, 계속 뒤로 가서 집적거린다.

운남성(=윈난성)과 사천성 경계에 무슨 아치 같은 건축물을 세워놓았다. 사천성은 “음식은 중국에 있고 맛은 사천에 있다”고 자랑할 정도로 요리로 유명한 곳이다. 사천성 요리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게 마파두부다.

마파는 곰보할머니라는 뜻, 그러니 마파두부는 ‘곰보할머니가 만든 두부요리’라는 뜻이다. 사천성 성도에 예쁘지만 얼굴은 곰보인 ‘교교’라는 여성이 살고 있었다. 어렵게 결혼했지만 남편은 사고로 일찍 죽었다.

교교는 생계가 막연해 시누이와 함께 음식점을 열게 되었는데, 그 식당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이 두부를 맵게 해서 기름에 볶은 두부요리였다. 교교가 늙어죽은 후 단골손님들이 그 음식에 마파두부라는 이름을 붙였다.

제사 터에 도착해 전날 용닝시장에서 최정규 작가님이 산 타르쵸(=티베트불교의 경전이 인쇄돼있는 색색의 천)를 매달고 돌아왔다. 일출을 보려면 아직도 멀어 그냥 소원을 빌며 탑 주위를 세 바퀴 돌고 돌아왔다.

수캐는 결국 뜻을 못 이루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우리 객잔 강아지만 홀로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걷다 보니 언제인지 모르게 루구후 호수 위에 해가 떴다. 어머니의 산, 거무산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없는 나라’를 지은 양 얼처 나무의 집이 사천성과 운남성 경계 어디라는데, 찾을 수는 없었다.

루구후 호숫가에서 태어난 그녀는 문맹이었지만 지역 문화국에서 주최하는 노래경연대회에 참가했다가, 그걸 계기로 베이징까지 가게 되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고, 후에 유명한 가수와 모델이 되었다. 모서족 출신 여성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어 자신의 삶과 일을 다룬 여러 권의 책을 펴냈는데, 그 중 그녀의 자전에 가까운 ‘아버지가 없는 나라’라는 책이 많이 알려졌다.

 

 

▲ 완회를 즐기고 있는 모서족 여성들.


루구후여, 호수여, 거무산이여.

약 3시간에 걸친 도보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오니 할머니는 전날과 똑같이 인류 평화와 가족(우리 여행자들도 당연히 포함된다)의 안녕을 빌며 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나니 객잔을 떠날 시간, 세상의 모든 만남은 기쁘나, 세상의 모든 이별은 또 슬픈 노릇. 그렇다고 안 만나고 살수 없는 노릇,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기다리는 것이 우리 삶의 숙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짜씨에게 내가 즐겨 쓰는 파이롯트 하이테크 펜을 선물했다. 각자 적당한 이별의 의식을 치르고 떠나려는데 당신 방 앞에 쪼그려 앉아 계시던 할머니가 가장 먼저 눈물을 흘렸다.

그걸 본 여행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하나 둘 울더니 급기야 모두 울었다. 버스 안은 갑자기 무거운 침묵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침울한 공간으로 변하고 말았다. 나도 따라 울었다. 여행자들과 제대로 말도 한 마디 못 나눠 본 할머니, 그런데 할머니의 사랑이 가장 깊었음을 나는 느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다시 이곳에 올 일은 없을 것이므로, 아니 최소한 할머니가 이곳에 살아 계실 동안 내가 다시 이곳에 올 일은 전혀 없을 것이므로, 할머니와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인사였다.

할머니의 우리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단지 이틀 묵어가는 여행자에 대한 가없는 사랑, 다시 볼일 없는, 먼 곳에서 온 다른 나라 여행자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 아! 할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사랑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그동안의 나의 조건 있는 사랑, 다시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무시했던 그동안의 나의 태도를 생각하니, 한없는 부끄러움에 눈물이 나왔다. 사람들은 모두 눈물 바람인데, 객잔 강아지는 영문도 모르고 멀뚱멀뚱 그냥 누워있다.

그게 더 슬펐다. 다리가 빨리 나아야 할 텐데. 짜시와 마지막 포옹을 하고 버스에 올랐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사랑을 배웠다. 떠날 때 보는 루구후 호수는 또 다르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루구후여, 호수여, 거무산이여.(다음호에 계속)     

 

▲ 글ㆍ사진 / 신현수(시인ㆍ부평고 교사)